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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주제

[중국영화]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는 패왕별희 (군벌시대/중일전쟁)

by 중역문 202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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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군벌시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진시황 이래

2200년 이상 중국을 다스린 황제체제의

군주제가 종식되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이 세워진다.

그러나 새로 건국된 중화민국 역시

위안스카이의 북양군벌과

쑨원의 공화세력간의 타협으로

이뤄진 임시체제였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불안한 상태였다.

영화 패왕별희 중

청나라 내시 출신 장내관이

공화국을 부정하고

청조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며 호통치는 장면

중국에서는 고대의 춘추전국시대가

20세기에 재현되었다고 할 정도로

각지에서 수많은 군벌세력들이 난립했다.

1925년 당시 주요 군벌 세력지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주요 지역은 모두 군벌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 군벌 세력은 단지 군인 지휘관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 출신 성분이 다양했는데

마적단 두목이나

마적단으로부터 지역을 수호하기 위한

자경단의 수장 등

온갖 출신 성분이 난자한 짬뽕이었다.

이러한 군벌 세력들은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건국 초기에

혼란한 상황을 틈타 난립한 존재들로서

명분이나 목적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따라서 자본과 병력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

당시 군벌은 모두 모병제였는데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이 많았기에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군벌이

더 많은 병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체계적인 군사교육이나

근대식 무기도 없이

그저 엄청난 양의 병력만이 경쟁력이었는데

실제로 한 개 군벌의 병력이

20만, 25만 등

개별국가의 군사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920년대까지 최전성기를 누리던 군벌세력은

쑨원이 1차 국공합작에 성공해

국민혁명군을 구성하고,

장제스의 북벌로 1928년 공식적으로 소멸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군벌의 실력자인 이들이 여전히 실재하게 된다.

한편 1931년에는

국민 정부로부터 배제된 공산당이

홍군을 결성하여

광서성 서금에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그러나 1934년

장제스의 공격으로 소비에트 정권을 철군하고

대장정에 오르게 된다.

장정 도중 공산당은

항일민족통일전신의 결성을 호소하며

8·1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에 동조한 장쉐량은

내전을 계속하는 장제스를 시안에 감금하고

공산당과 대화를 촉구했다.(1936, 시안사건)

이로 인해 제2차 국공합작에 성공하게 된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당시

중국에서 최고로 가는 경극배우가 된 둘.

하지만 그들의 주 활동무대였던 베이징이

화북분리공작(화북사변)에 의해

일본에 넘어가니 마니 하는 불안한 상황.

화북분리공작(1935~1937)

중국에서는 화북사변이라고 하는데,

당시 관동군을 주축으로 하는 일본군부가

화북의 5개 성을 국민정부의 통치로부터

분리시킨 독립 상태로 만들어

일본 종속 괴뢰국을 수립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 있는 국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중화민국은 '국민당'이 주축인

국민정부였다.

중일전쟁(1937~1945)

일본은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중국에 대한 전면전을 개시한다.

1937년 7월 7일,

일본군이 노구교 부근에서 야간연습을 실시하던 중

몇 차례 총성 뒤에 병사 한 명이 실종하게 된다.

사실 그 병사는 용변 후 다시 복귀했으나,

일본군은 이를 중국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는 구실로

다음날 새벽 노구교를 점령하게 된다.

이후 7월 28일,

북경, 천진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고

12월 13일에는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을 점령한 뒤

이듬해 2월까지 대량학살과, 강탈, 강간 등을

저지르는 '남경대학살'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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